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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땅의 역사] 천지개벽의 시작! 근현대사의 최초 목격자, '인천' 땅의 역사를 들여다본다! '미스트롯2' 마리아와 시간여행!
<특별기획 땅의 역사 - 근현대사 최초 목격자 인천>
1883年 조선에 불어온 변화의 바람, 세계를 잇는 통로가 된 작은 어촌 마을!
천지개벽의 역사가 시작되었던 곳,
근현대사의 최초 목격자, '인천' 땅의 역사를 들여다본다!
- TV CHOSUN <특별기획 땅의 역사> 오늘(29일) 밤 8시 방송
물길을 따라 삶은 달라지고, 역사는 유유히 흐른다. 우리가 몰랐던 역사의 흔적을 찾아 나가는 TV CHOSUN <특별기획 땅의 역사>, 이번에는 인천광역시로 향한다.
옛날부터 우리나라에 들어오기 위한 관문의 역할을 한 인천. 많은 외국인이 조선으로 들어오며 인천은 조선의 근대화를 촉발하는 시발점이었다. 근대화의 시작, 인천 땅의 역사를 <근현대사 최초 목격자 인천>에서 만나본다.
■ 조선으로 들어온 첫 관문, 제물포항
1883년 조선의 폐쇄적인 대외정책에 변화가 왔다. 열강들의 끊임없는 개방 요구에 강제적으로 문을 개방한 것이다. 강화도 조약을 시작으로 은둔의 나라였던 조선은 제물포항을 열면서 세계를 만나게 된다. 개항 이후 인천은 천지개벽 수준의 변화를 맞이한다. 인천은 조선 시대에 근대 문물을 처음으로 받아들인 도시였다. 인천의 제물포 포구 일대는 1883년 개항 이후 근대적 도시로 성장하고 발전했으며 인천항은 조선의 관문 역할을 했다. 신문물이 유입되며 근대화가 싹을 틔웠고 조선은 한층 더 발전할 수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일제 수탈이 본격화되며 인천은 역사의 아픔과 근대화의 시작이라는 두 가지를 모습이 공존하게 되었는데, 당시 인천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 미스트롯2 마리아와 함께하는 시간여행
인천은 여러 외국인이 거주하고 활동했다. 나라별로 다른 양식의 건물이 지어지고 서양 물건이 유통되는 등 이국적 풍경과 문물을 만날 수 있는 특별한 장소가 됐다. 당시에 지어진 건물들은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대로 보존돼 있어 이국적인 분위기가 느껴진다. 레트로한 감성이 가득한 이곳에 미스트롯2의 주역, 마리아가 떴다! 한 세기도 더 지난 개항기 인천의 감성을 그대로 느끼며 그 옛날 이곳엔 어떤 일이 있었는지 마리아와 함께 시간여행을 떠나본다.
■ 조선인이 없던 조선의 땅
조선이 개방되며 관문이라 할 수 있는 인천에서는 외국인의 거주, 무역 활동 등이 허용됐다. 청나라와 일본을 비롯한 여러 나라은 개항장 내에서 거류지를 설정하기도 했다. 특히 서양인들은 사교클럽까지 만들었는데, 제물포 구락부는 각국 외국인들의 사교 모임의 장으로 활용됐다. 조계지는 항상 외국인으로 북적댔지만 정작 조선인들은 조선의 땅인 이곳에 들어올 수 없었다는데... 이곳에는 어떤 아픈 역사가 있는 걸까?
■ 인천 최초는 한국 최초
문호개방으로 인천은 전국에서 신문물을 가장 먼저 접할 수 있는 곳이었다. 그렇다 보니 인천은 최초에 대한 기록이 꽤 많은 도시이다. 은행, 교회, 호텔 우체국뿐만 아니라 축구와 야구 등 근대 스포츠가 도입된 곳이고 서양과 맺은 최초의 조약 체결지이기도 하며 최초 철도, 최초 이민과도 관련이 있다. 많은 최초가 인천에서 시작되며 근대화를 가장 먼저 이룰 수 있었지만, 외부에 의해 강제로 개방 당한 탓에 아픈 역사도 많았다. 찬란한 근대화의 물결 속 인천의 명과 암을 들여다본다.
■ 세월이 흘러도 계속되는 아픔
개항 전후 외세의 각축으로 온갖 수난을 겪은 인천. 일제강점기에는 군사기지로 이용됐으며 6 · 25전쟁 때는 인천상륙작전의 전초지역이 돼야 했다. 전쟁과 평화가 수없이 교차하고 공존했던 인천은 100년이 지난 지금도 연평해전과 폭격을 겪으며 수난이 이어지고 있다. 가슴 아픈 비극을 가진 그곳으로 떠나본다.
근현대사의 최초 목격자, 인천의 역사는 오늘(29일) 밤 8시 TV CHOSUN <특별기획 땅의 역사 – 근현대사 최초 목격자 인천>에서 확인할 수 있다.
[배포일 : 2021.06.29]